부산 이시가키: 임진왜란 역사의 증거 부산포왜성

📋 목차
안녕! 오늘은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지만 아주 중요한 역사를 만나볼 거야. 바로 부산 이시가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시가키가 뭐냐고? 그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부산에 쌓았던 돌담, 즉 부산포왜성의 일부를 말한다. 왜 일본군의 성이 부산에 남아있는지 궁금하지? 지금부터 함께 역사 속으로 떠나보자! 😊
부산 이시가키: 역사 속 연결고리

부산 동구 좌천동에 남아있는 부산포왜성 이시가키
부산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중요한 항구 도시였다. 그래서 일본과 교류도 많았지만, 아픈 싸움의 역사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부산에 지었던 '부산포왜성'의 돌담, 즉 이시가키는 부산과 일본 성곽 건축이 서로 만났던 직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부산 이시가키를 통해 우리는 아주 특별한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부산포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래서 이 성곽에는 일본의 성곽 건축 기술이 그대로 담겨 있다.
더 자세한 부산포왜성 이야기는 나무위키 부산포왜성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산포왜성은 왜 만들어졌을까?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부산포왜성을 짓는 모습 상상도
부산포왜성은 임진왜란이 시작된 1592년에 일본군이 부산진성을 빼앗자마자 바로 짓기 시작했다. 일본 기록을 보면 1593년 3월부터 8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성은 전쟁 내내 일본군의 가장 중요한 총사령부 역할을 했다. 무려 1만 명의 왜군과 400척이 넘는 배가 항상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니,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부산포왜성 건립 시기 📝
- 시작: 1592년 4월, 부산진성 함락 직후
- 본격 건설: 1593년 3월 ~ 8월 (약 5개월간)
- 역할: 임진왜란 내내 일본군의 총사령부
일본 성곽인 왜성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위키백과 왜성 페이지를 참고하자.
신기한 돌담, 이시가키는 뭐지?

일본 성곽 이시가키의 다양한 축성 기법
그럼 이제 이시가키가 정확히 뭔지 알아볼 차례이다. 이시가키는 일본 성곽에서 성의 바닥이나 벽을 만들 때 쓰는 돌담 쌓는 기술을 말한다.
이 돌담을 쌓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돌을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 쌓는 '메쌓기(野面積み)'와 돌의 줄을 맞춰서 가지런하게 쌓는 '줄눈쌓기(布積み)' 같은 것들이다.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일본의 유명한 장군들이 성을 지을 때 이 이시가키 기술을 많이 썼다. 부산포왜성에도 이런 일본식 이시가키 기술이 적용된 걸 볼 수 있다.
이시가키 주요 축성 기법 📝
- 메쌓기 (野面積み): 자연석을 그대로 쌓는 방법
- 줄눈쌓기 (布積み): 석축의 줄을 맞춰서 쌓는 방법
일본 성곽의 이시가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나무위키 일본의 성/이시가키를 찾아보자.
지금도 남아있는 부산포왜성 이시가키

좌천동 어린이집 옆에 남아있는 부산포왜성 이시가키
놀랍게도 부산포왜성의 이시가키는 지금도 부산 동구 좌천동에 일부 남아있다. 특히 좌천어린이집 옆에는 높이 5m 정도 되는 돌담이 아직도 서 있다.
이곳은 원래 증산왜성의 앞쪽을 방어하던 작은 성곽 자리였다고 한다. 이 부산 이시가키는 부산포왜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역사 유물이다.
현재 부산 동구 좌천동에 남아있는 부산포왜성 이시가키는 임진왜란 당시의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적이다.
조선시대 부산의 역사에 대해 궁금하다면 부산광역시 조선시대 역사 페이지를 방문해 보자.
부산포왜성, 어떻게 생겼었을까?

부산포왜성의 구조를 설명하는 그림
부산포왜성은 산성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평지에 가까운 '평산성' 형태를 띠었다. 성곽은 자성대를 중심으로 동천 하구까지 길게 이어진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로 둘러싸여 있었다.
데마루(출마루)나 데지로(출성) 같은 일본식 성곽의 특징들도 잘 나타나 있다. 주요 방어 구역에는 협축(夾築)과 도베이(土塀), 야구라(櫓) 같은 시설들이 튼튼하게 설치되어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고 한다.
부산포왜성의 주요 방어 시설 🛡️
- 노보리이시가키 (登り石垣): 산을 따라 길게 이어진 돌담
- 데마루 (出丸) / 데지로 (出城): 성 밖으로 돌출된 작은 성
- 협축 (夾築): 두 줄로 쌓은 성벽
- 도베이 (土塀): 흙으로 만든 담장
- 야구라 (櫓): 망루 또는 다락
이처럼 부산포왜성은 일본의 성곽 건축 기술이 한반도에 직접적으로 적용된 중요한 사례 중 하나이다.
사라져간 부산포왜성, 그리고 지명 이야기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산포왜성은 구한말 이후 부산의 도시 개발과 1950년대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대부분 파괴되었다. 소중한 이시가키를 포함한 많은 부분이 사라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증산왜성을 '사적'으로 지정해 보존했지만, 해방 이후에는 그마저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지금은 증산공원에 아주 일부만 남아있어, 그 시절의 역사를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역사 유적을 보존하고 지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부분이다.
그리고 '부산'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부산포(富山浦)'라고 불렸다고 한다. 15세기 후반에 증산의 모양을 보고 '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임진왜란 전부터 부산포는 바다를 통한 교역의 중심지였다고 하니, 지금의 부산처럼 예전에도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산광역시의 역사는 정말 역동적이다.
부산 이시가키: 임진왜란 역사의 증거 📝
오늘 우리는 부산 이시가키, 그리고 부산포왜성을 통해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을 들여다봤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침략 거점이었던 이곳에 남아있는 이시가키는 단순한 돌담이 아니라, 한일 양국의 역사적 교류와 충돌, 그리고 건축 문화가 만났던 특별한 유산이다.
이 글을 통해 부산포왜성의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산 이시가키 핵심 요약
자주 묻는 질문 ❓
참고 자료 및 출처 📋
- 부산포왜성 - 나무위키
- 삼국시대 - 부산의 역사 - 부산광역시
- 일본의 성/이시가키 - 나무위키
- 부산소개 : 부산의 역사 : 시대별 부산역사 : 조선시대 - 부산광역시
- 왜성 (건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오키나와-홍길동이 정말 이시가키 섬으로 건너갔을까?
- 이리오모테 이시가키 국립공원 - Vivid Japan
- [`대만 ~ 오키나와`크루즈 여행] 옥빛 바다 작은 섬 점점이… - 부산일보
- 이시가키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인천국제공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다양한 지형이 매력적인 이시가키섬, 꼭 가봐야 할 절경 명소 10선!
- 이시가키섬의 도심 속 즐거움: 도심 속 이자카야와 호텔!
오늘은 부산의 숨겨진 역사, 부산 이시가키에 대해 알아봤다. 우리 주변에도 이렇게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많으니, 앞으로도 주변을 더 자세히 살펴보는 건 어떨까? 😊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물어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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